그 여름 라틴아메리카 - 갈레아노와 함께
마흔이 된 그녀와 남편은 결혼 10주년을 핑계로 1년 동안 3개 대륙 여행에 나서고 마침내 마지막 여행지인 라틴아메리카에서 자신의 삶을 향해 던졌던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다. 배낭에 담겼던 갈레아노의 책들은 라틴아메리카에 덮였던 ‘무지’와 ‘소외’ ‘왜곡’의 껍질을 벗겨내는 여정에 길잡이가 돼주었고, 우리와 놀랍도록 닮아 있는 그들의 현실과 마주해서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삶의 방식을 고민한다. 이 책은 페루 리마에서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 쿠바를 거쳐 멕시코 오아하까에 이르는 50여 일간의 여정을 통해 역사와 문명, 혁명과 민주주의, 그리고 ‘우리의 모습’을 반추하고 성찰한다.
역사를 보다, 사람을 읽다 그리고 우리를 묻다
“말하자면, 이 여행은 첫사랑과의 순진한 약속이나 맹세 같은 것이었다. 나이 마흔, 결혼 10년차…, 절반쯤 남은 삶의 방향을 결정지어줄 어떤 계기 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그래서 택한 것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나는 긴 여행이었고, 혹시나 이 순진한 약속이 일상의 안온함에 궁둥이 붙일까 두려워 지인들에게 농담처럼 떠벌리고 다녔고, 그러다보니 거짓말처럼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싣게 된 것이다.”
누구나 긴 여행을 꿈꾼다. 더구나 저 멀리 라틴아메리카의 광활한 자연과 불가사의한 역사의 숨결이 살아 쉬는 곳이라면 더욱 간절할 터이다. 우리 사회에서 나이 마흔에 10년차 부부가 고민해야 하는 문제들로 삶이 지쳐간다면 혹 여행은 그 삶에 대한 깨달음을 제시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쉽지가 않다. 대부분의 삶들이 이 핑계 저 핑계로 제 스스로 목줄 채우기에 바쁘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저자 스스로 지인들에게 떠벌리며 망신당하지 않으려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려고 했을까. 오늘 그녀의 재치와 용기가 그 여름 라틴아메리카의 현실을 우리 삶의 방식과 교차해가며 촘촘히 엮어, 좀더 나은 우리의 길을 묻고 있다.
먼저 여행이 우리에게 만들어내는 마법은 ‘무지’다. 한번도 마주하지 않은 그 장소와 낯선 이와의 조우,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와 해석에 가까운 독도법 등. 결국 맨몸으로 부딪혀 깨닫고서야 자신의 경험으로 온전히 그곳을 바라본다. 다만 저자는 우루과이 출신으로 라틴아메리카의 진보적 논객이자, 소설가, 역사가, 언론인인 에두아르도 갈레아노의 책(《수탈된 대지》 《불의 기억》 《거울 너머의 역사》)을 길잡이 삼아 라틴아메리카의 맨얼굴을 보고자 노력했다. 책 곳곳엔 갈레아노가 풀어놓은 ‘거울 너머의 역사’가 우리의 무지를 그나마 덜어주고 있다.
“‘신세계’로 이름 붙기 전 그 땅에 얼마나 많은 인간들이 살고 있었는지,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자연을 대했고 그로부터 어떤 문명을 만들어냈는지, 바다 건너에서 온 구세계의 인간들이 그들을 어떻게 짓밟았고 그렇게 시작된 콜럼버스의 저주가 어떻게 뿌리박혔는지, 독립 후 계속된 혁명과 쿠데타, 반란과 독재의 소용돌이 속에서 민중의 삶은 얼마나 고단했을지가 눈앞에 그려졌다.”
여행이 두 번째로 빚어내는 마법은 ‘왜곡’이다. 해안가 갈매기의 조분석으로 유럽이 굶주림을 모면한 반면 페루의 바닷새들은 전멸하고 만 이면의 역사, 빼앗기는 것에 익숙한 볼리비아가 우유니 소금사막의 광활한 풍광 아래 헤아릴 수 없이 묻혀 있는 리튬을 지켜내기 위한 선택, 칠레의 사회주의자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가 쿠데타에 맞서다 숨을 거둔 산띠아고의 모네다 궁전, 아르헨티나 군부의 좌익 소탕 명분으로 ‘추악한 전쟁’ 당시 사망과 실종된 3만여 명의 지식인 청년들을 오늘까지도 잊지 말자는 ‘망각 금지’의 부에노스 아이레스, 체 게바라와 까밀로 시엔푸에고스?피델 까스뜨로가 만들어낸 라틴아메리카 사회주의 혁명의 심장부 쿠바, 멕시코 민중들의 삶과 부르주아 계급에 대한 노골적인 조롱과 풍자로 강렬한 색채가 인상적인 리베라와 오로스코?시케이로스의 벽화가 뛰어나올 듯 전시되어 있는 멕시코 예술궁전 등. 정복의 역사가 만들어낸 오늘날 라틴아메리카의 사회주의를 바라보는 왜곡된 시각은 비로소 저자와 마주하고서야 다시 ‘왜곡’되어 온전히 그들의 시각으로 우리에게 투영된다.
자연이 이루어낸 멋진 풍경과 그곳을 지키고 살아가는 삶들의 모습, 그리고 그 역사를 찾고 더듬는 저자가 경험한 그 여름의 라틴아메리카는 우리의 ‘무지’와 ‘왜곡’을 벗겨냈을 뿐 아니라 지금도 귓전을 때리고 있는 아옌데의 마지막 라디오 육성처럼 좀더 나은 사회로의 전진을 꿈꾸고 있다.
“그들은 나를 부술 수 있어도 사회의 진전을 멈출 수는 없습니다. 역사는 우리의 것이고, 인민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언젠가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더 나은 사회로 향하는 위대한 길을 열 것이라고 여러분과 함께 믿습니다.”
송혜령
저자 송혜령은 방송작가. 대학 졸업 후 십수 년간 TV 교양 프로그램과 토크쇼, 다큐멘터리 등을 만들면서 세상 사는 법을 배웠고, 독서와 여행을 통해 세상 읽는 법을 배우고 있다. 마흔 살이 되던 해 남편과 함께 하던 일을 작파하고 주위의 부러움(“좋겠다”)과 우려(“갔다 와서 뭐 하려고?”)와 억측(“돈 많은가 봐”) 속에서 1년간의 세계여행을 감행했으며, 그 후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진리는 잊고 ‘늦바람이 무섭다’는 명언을 실감하면서 틈만 나면 ‘여기보다 어딘가로’ 떠날 기회를 엿보는 중이다.
서문 / 프롤로그
페루, 의심으로 만나 연민으로 헤어지다
두 얼굴의 리마 /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었다 / 황금도시의 전설, 꾸스꼬 / 태양의 선물, 잉까의 삶
‘성스러운 계곡’으로의 여행 / 마추 삑추에 서다 / 띠띠까까로 가는 길 / 부유하는 섬, 우로스
볼리비아, 천국에서 꾸는 세상 가장 가난한 꿈
호수 건너 ‘하늘 아래 첫 수도’로 / ‘평화’라는 이름의 도시, 라빠스 / 우리는 지금 우유니로 간다
세상에서 가장 큰 거울 속을 걷다 / 사막에서 만나는 초현실의 세계 / 살아 숨 쉬는 지구를 만나다
칠레, 비 오는 사막에서 바람 부는 빙하계곡까지
아따까마 사막에 비가 내린다 / 아따까마를 탈출해 산띠아고로 / 오늘, 산띠아고는 흐림 / 허탕의 추억
발빠라이소, 그 천국의 계곡에서 / 남미 대륙의 끝자락을 밟다 / 신들이 사는 곳, 또레스 델 빠이네
아르헨티나, 남미에 있는 백인들의 나라
엘 깔라파떼, 축제가 시작됐다 / 차가운 세월의 매혹, 모레노 빙하 / 연기를 뿜는 산, 피츠로이
망각 금지, 부에노스 아이레스 / 비 내리는 부에노스 아이레스 / 땅고를 만나고 비로소 이 도시가 보였다
뿌에르또 이과수에서 박씨 총각을 만나다 / 이과수 폭포, 당신의 언어로 묘사하려 애쓰지 말 것!
브라질, 태양이 빛날수록 그림자는 짙어진다
태양의 도시, 리우 데 자네이루 /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아름다운
꼬르꼬바두 언덕의 예수상이 빛났다, 하루 종일 / 리우의 3일은 짧았다, 공항의 밤도 짧았다
쿠바, 혁명은 계속되어야 한다
쿠바 땅을 밟았다 / 쿠바를 의심하다 / 체 게바라와 헤밍웨이 팝니다 / 비 오는 밤 아바나 재즈 클럽에서
혁명의 맛 / 한낮의 다이끼리, 한밤의 쿠바 리브레 / 관성을 거스르는 일 /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야
멕시코, 너의 눈물이 나를 부를 때
카리브 해의 어부들은 어디로 갔을까 / 이슬라 무헤레스, 그곳에는 마야의 여신이 산다
옥수수 인간들이 만든 세상, 스칼렛 해상공원 / 뚤룸 유적, 마야를 추억하다
신화가 된 문명의 세계, 치첸 잇싸 / 자부심 넘치는 아스떽의 수도에서 / 혁명의 배반, 벽에 갇힌 혁명
신들의 도시, 떼오띠우아깐 / 갈색의 마리아가 있는 곳, 과달루페 성당 / 메뚜기 언덕의 눈물, 차뿔떼? 성
멕시코 고대문명 산책 / 오아하까에 취하다 / 오아하까에서 춤을
에필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