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슬픔에게 무릎을 꿇다 : 실천시선 222

슬픔에게 무릎을 꿇다 : 실천시선 222

저자
이재무
출판사
실천문학사
출판일
2016-08-26
등록일
2018-08-02
파일포맷
AUDIO
파일크기
335 Bytes
공급사
우리전자책
지원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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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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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일상의 진실성을 서정의 세계로 끌어올리다 1983년 『삶의 문학』을 통해 등단한 이재무 시인의 열 번째 시집이 실천문학사에서 출간되었다. 첫 시집 『섣달그믐』(1987)부터 이번 시집 『슬픔에게 무릎을 꿇다』까지 지난 30년간 한국 서정시의 중심에 서서 일상의 진실성을 서정의 세계로 끌어올린 시인은 각박한 현실과 고뇌를 인간적인 사랑으로 끌어안아왔다. 특히 이번 시집에는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애정, 인생의 허무와 그 안에 담긴 진실, 노년의 여로와 의미들이 인상 깊게 그려지고 있다. 빈 독에 어둠 같은 적막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친숙했던 것들과 이별하게 된다. 그것은 사랑일 수도 있고, 가족이거나 기억일 수도 있다. 그 모든 것들은 ‘나’를 이루고 있었던 것들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스스로와 이별하게 된다. 신발장 속 다 해진 신발들 나란히 누워 있다 여름날 아침 제비가 처마 떠나 들판 쏘다니며 벌레 물어다 새끼들 주린 입에 물려주듯이 저 신발들 번갈아, 누추한 가장 신고 세상 바다에 나가 위태롭게 출렁, 출렁대면서 비린 양식 싣고 와 어린 자식들 허기진 배 채워주었다 밑창 닳고 축 나간, 옆구리 움푹 파인 줄 선명한, 두 귀 닫고 깜깜 적막에 든, 들여다볼 적마다 뭉클해지는 저것들 살붙이인 양 여태도 버리지 못하고 있다 _ 시 「폐선들」 전문 처마 떠난 제비처럼 들판을 쏘다니며 새끼들 주린 배를 채워주기 위해 세상을 떠돌던 가장의 신발이 이제는 낡아빠져 신발장 속에 고요히 정박해 있다. 살붙이인 양 버리지도 못하게 된 그것들을 들여다볼 때마다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은 그들도 주인처럼 늙고 지쳐 보여서일까. 식솔들이 배곯지 않게 하기 위해 일에 매달리다 보니 닳아버린 신발처럼 자신의 한 귀퉁이가 서서히 마모되고 있는 것을 몰랐다. 시인이라는 ‘직업’을 가진 비정규직인 그는 “물그릇에 밥을 말아 먹”으며 그 속에 비친 “희멀쑥한 얼굴”을 바라본다. 대접에 비친 자신을 떠먹으며 바쁘게 한 끼를 해결한 시인은 오늘도 “질통처럼 무거운 가방을 어깨에 메고/없어진 얼굴로 현관을 나선다.”(「나는 나를 떠먹는다」). 오래전 일입니다. 주말이면 아이와 나는 집 앞 공터에서 배드민턴을 쳤습니다. 지는 것을 몹시 싫어하는 아이를 위해 시합에 져주곤 하였는데 눈치 못 채게 져주느라 여간 애쓰지 않았습니다. 5전 3선승제. 1세트는 내가 이깁니다. 2세트는 가까스로 집니다. 이때 노력이 필요합니다. 일부러 진 것을 알면 아이가 화낼 게 빤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세트에 가서 듀스를 거듭하다가 힘들게 집니다. 그러고는 연기력을 발휘하여 분하다는 듯 화를 냅니다. 마른미역처럼 구겨진 얼굴을 하고 있는 내게 아이는 미안한 표정 지으면서도 한결 업된 기분 참을 수 없는지 탄력 좋은 공처럼 통통 튀면서 경쾌하게 집으로 돌아갑니다. _ 시 「배드민턴과 사랑」 부분 그렁그렁 앞산 뒷산이나 담고 사시다가 예순을 한 해 앞두고 숟가락 놓으셨다. 그런 무능한 아비가 싫어 담 바깥으로만 싸돌았는데 아, 빈 독에 어둠 같았을 적막 _ 시 「추석」 부분 아버지와 아들의 즐거운 한때를 그린 시 「배드민턴과 사랑」이 어딘가 쓸쓸해 보이는 이유는 시의 첫머리에 “오래전 일입니다”라고 조용히 밝히고 있기 때문일까. 우리 아버지들은 가족을 위해 가족이 아닌 사람들과 더 오래 있어야 하고, 아이들은 집에 있는 시간보다 학교나 학원에 있는 시간이 많다. 우리의 집은 가족과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정을 키우는 공간이 아니라, 내일 다시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 지친 몸을 누이는 곳일 뿐이다. “들키지 않게 져주는 것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사랑”이라고 고백하는 시인도 어느덧 그의 아버지와 ‘동갑’이 되었다. “쉰다섯부터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 아버지의 흐릿한 눈을 떠올리며 “빈 독에 어둠 같았을 적막”을 생각하는 시인은 “내 나이 쉰다섯”, “크게 병들었는데 환부가 없다”고 가슴 아파한다. 상처받은 자의 아름다움 사라지는 것들을 부여잡지 못하는 시인은 “이 세상 한결같은 것은/먼지밖에 없는 것 같다”(「먼지의 힘」), “우리네 설운 삶을 다녀가는 무수한 인연들이 혹여 저 돌멩이들과 구두가 맺은 지극히 사소한 우연 같은 것은 아니었을까”(「돌멩이와 구두」), “붉은 열정이 새어 나간 몸은/알곡 빠져나간 광목 자루처럼 헐렁해졌다”(「한강 블루스」)라고 말하며 인생에 대한 허무주의적 시각을 보이기도 한다. 그는 고단한 인생을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그들의 정신과 육체가 시들어가는 과정을 처연한 심정으로 바라본다. 누수처럼 느릿느릿 걷고 있는 노인의 몸에서 가닥가닥 풀린 길들 시나브로 흘러나오고 있다 대관절 저 구부정한, 마른 장작 같은 몸피 속에는 얼마나 많은, 젖은 길들 엇꼬여 쟁여 있는 것일까 여생이란 무엇인가 몸 안에 똬리 튼 길들 하나, 하나 어르고 달래 밖으로 흘려보내는 일 아닌가 _ 시 「여생」 전문 그러나 시인의 처연함과 허무, 슬픔은 무의미하고 소모적인 감정만은 아니다. 시는 실패와 슬픔, 몰락, 상실을 연료로 하여 비로소 생성되는 ‘마음의 진주’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시인으로서 그는 ‘상처받은 자의 아름다움’이 좋은 시를 낳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인생도 시와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는 고통과 슬픔을 통해, 행복해질 수 있다. 시인은 그의 산문에서 “시는 실패의 기록이다. 비록 그것이 희망을 노래할지라도 절망을 통과하지 않을 때는 깊은 울림으로 오지 않는다”(『생의 변방에서』)라고 적었다. 『슬픔에게 무릎을 꿇다』라는 제목이 암시하듯이, 이번 시집은 그가 최근 몇 년간 겪은 깊은 상처와 회한, 슬픔, 분노, 고독의 기록이다. 그러나 그 무릎 꿇음은 패배의 행위가 아니라 ‘재기’(再起; 다시 일어섬)의 의미에 가까울 것이다. 어항 속 물을 물로 씻어내듯이 슬픔을 슬픔으로 문질러 닦는다 슬픔은 생활의 아버지 무릎을 꿇고 두 손 모아 고개 조아려 지혜를 경청한다 _ 시 「슬픔에게 무릎을 꿇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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