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 네트워크 2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녀가 나타났다. 그것도 서재에서 죽은 채로. 그는 어떤 여자와 서귀포 남원의 큰엉 해안 절벽을 따라 난, 현무암 판석이 깔린 오솔길을 걷고 있었다. 그녀는 부드러운 손을 그의 팔에 감고 있었다. 간간이 팔에 닿아오는 그녀의 가슴의 감촉 때문에 그는 온몸에 신경이 곤두서서 제대로 걷기가 어려웠다. 바다 쪽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습기로 텁텁한 공기를 한라산 쪽으로 몰고 갔다. 벼랑을 따라 난 길은 숲으로 이어졌고, 그 숲에는 먼나무와 우묵사스레피가 우거져 어두운 터널을 만들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파도는 오늘따라 기분이 좋은지 벼랑 밑에서 얌전하게 놀고 있었고, 하늘은 구름 한 점마저도 치워버려 한라산이 바로 손에 잡힐 듯했다.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날, 완벽한 길을 그녀와 함께 걷고 있었다. 숲 입구에 다다르자 그녀가 멈추어서 그의 귀에 대고 무슨 말을 했는데 그때 날아간 꿩에 신경 쓰느라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를 못했다. 숲 안은 캄캄했다. 그녀가 무서운 듯 그의 팔을 꼭 붙잡았다. 그때까지도 그는 한 번도 그녀를 똑바로 쳐다본 적이 없었다. 그녀를 바라보면 그녀가 바로 사라져 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가 숲의 입구로 발을 한 걸음 내딛자 숲의 입구가 순식간에 변기의 물구멍 같은 것으로 변해버렸다. 이어 바닷물이 두 사람을 덮쳤고 두 사람은 소용돌이치는 물과 함께 숲으로 빨려 들어갔다.
주현석은 전라북도 전주에서 태어나 한양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반도체 회사 생산 계획, 컴퓨터 프로그래머, 미국계 회사 한국 지사장으로 재직하다가 그만두고 그토록 하고 싶었던 글쓰기에 뛰어들었다. 글을 쓰고 있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는 그가 쓴 《어느 형사의 짧은 휴가》는 그의 세 번째 작품이다.
안내 작가 소개 4. 죽은 자에게서 온 이메일 (2) 5. 똥을 염색하다 6. 도둑질하기 7. 숨은 고수 8. 똥 굽기 9. 해킹 좀 부탁해 10. 될 대로 되라 11. 화장실 접선 12. 뛰는 놈, 나는 놈 그리고 기는 놈 13. 돈을 놓고 튀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