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한 시간 4
환상 속에 머물고 있는 것만 같은 나날이었다. “희귀병이요……?” “클라인 레빈 증후군(Kleine-Levin syndrome). 일명 잠자는 숲속의 공주 신드롬. 짧게는 하루에서 일주일, 길게는 한 달. 그 시간 동안 잠을 자게 되는, 뭐 그런 정신병이라네요.” 처음 보는 여자의 이름을 알고, 대뜸 그녀를 기억하고 있다며 소리부터 지르는. 마치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희귀한 병을 앓고 있는. 그는 아주 특이한 사람이었다. 꽤 많이. 한데, 그런 그가 낯설지 않았다. 흔히들 말하는 ‘데자뷰(Dejavu)’. 그와 함께 할 때면, 마치 그 순간들을 어디선가 본 것만 같은 착각이 일었다. 평소보다 잦고, 너무나 선명하게. 또한 단순한 착각이라 믿었던 것들이 점차 마치 현실처럼 느껴졌다. 그로 인한 것들 때문이었을까. “난 한 번 본 건 절대 잊어버리지 않아.” 아니면, 너무나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그의 신비한 능력 때문이었을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왜 이토록 익숙했었는지. 잊혀졌던 계절. 너는 사라지지만, 넌 내 머릿속에 가득 차 있던. 절대로 지워지지 않는 모든 순간이었다.
영문도 모른 채 어느 날 갑자기 할머니가 되어버린 소녀. 절망 속에서 길을 걷다 우연히 거대한 마법의 성으로 들어가, 마법사 하울을 만나 펼쳐지는 환상의 이야기. ‘인생의 회전목마’ 라는 제목의 잔잔한 음악. 모든 게 좋았던 ‘하울의 움직이는 성’. 그때부터 그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재미없는 일상 말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그런 환상 속의. 하지만 이야기 속 주인공은 될 수 없었고, 마법 같은 건 이 세상에 없었다. 마법이 존재하는 환상을 만들려면, 그 환상 속 주인공이 되고 싶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었다. 내가 바라는 환상을 만들어내는 것. 아직도 완성하지는 못한 것 같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