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옛날에 순 임금은 요 임금에게서 왕의 자리를 이어받은 후에 12주의 목(牧)에게 백성을 잘 기르도록 가르쳤고, 문왕은 정치 제도를 확립하면서 사목(司牧: 백성을 보살피는 관리)을 세워 수령으로 삼았다. 맹자는 평륙(平陸: 중국 전국시대 제나라의 지명)에 갔을 때 백성을 기르는 것을 가축에게 꼴을 먹여 기르는 것으로 비유하였다. 이처럼 백성을 기르는 것을 ‘목(牧)’이라고 이른 것은 성현(聖賢)이 남긴 뜻이다.
성현의 가르침에는 원래 두 가지 길이 있다. 사도(司徒: 중국 주나라 때 관직의 이름으로 육경(六卿) 가운데 하나. 백성을 교화하는 일을 맡아보았음)는 만백성을 가르쳐 각기 자신의 몸을 닦도록 하였고, 태학(太學: 도읍에 세웠던 최고의 교육 기관)에서는 왕족이나 고위 관료의 자제들을 가르쳐 각기 자신의 몸을 닦고 백성을 다스리도록 하였다. 백성을 다스린다는 것은 백성을 기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의 배움은 몸을 닦는 것이 반이고, 백성을 기르는 것이 반이다.
저자소개
선생의 자(字)는 미용(美鏞) 또는 송보(頌甫)요, 약용(若鏞)은 그의 이름이고, 다산(茶山)은 호며, 본관은 나주(羅州)다. 1762년(영조 38) 6월에 경기도 광주(廣州) 초부면(草阜面) 마현(馬峴)에서 태어나, 1836년(헌종 2)에 그곳에서 별세했으니 향년 75세였다.
1783년(정조 7) 회시(會試)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고, 1789년에는 식년 문과(式年文科)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가주서(假注書)에 임명되었으며, 이듬해에는 검열(檢閱)이 되어 규장각에 출입하면서 진귀한 서적을 마음껏 볼 수 있게 되어 그의 학문을 더욱 넓힐 수 있었다. 1795년(정조 19)에는 서학(西學)에 관련이 있다는 혐의로 금정찰방(金井察訪)으로 좌천되었으나, 그해 12월에 다시 중앙으로 들어와 병조참지(兵曹參知), 우부승지, 좌부승지를 역임했다. 1797년에 다시 들어와 형조참의로 승진했다.
그러나 1801년, 즉 순조 원년에 소위 신유교난(辛酉敎難)이라는 천주교도에 대한 대박해가 일어났다. 다산의 두 형 약전(若銓)ㆍ약종(若鍾)이 함께 체포되었는데, 셋째 형 약종은 참형(斬刑)에 처해지고 둘째 형 약전과 다산은 유배되었다. 둘째 형 약전은 전남 강진(康津)으로 유배되었다가 흑산도로 옮겨졌으며, 다산은 경상도 장기(長耆)로 유배되었다가 뒤에 강진으로 옮겨졌다.
다산은 강진에서 1801년부터 1818년까지 18년이란 긴 세월을 귀양살게 되었는데, 거기에 있는 윤박(尹博)의 정자인 다산초당(茶山草堂)에서 책을 쓰고 제생(諸生)을 가르쳐 즐거움을 삼았다. 그의 호 다산(茶山)은 여기서 지어진 것이며 그의 많은 저서들도 대부분 이 시기에 이루어진 것이다. 이 기간은 그에게 있어서 실로 불행한 시기였으나, 그로 하여금 불후의 업적을 남기게 한 소중한 기간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