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이야기
차가 조선에 들어오기는 신라의 선덕여왕의 재임 기간(632~647)이었다.
당시는 이른바 삼국의 말기로 중국에는 차가 유행하기 시작하던 당나라 초기에 해당하며 지금으로부터 1,300여 년 전의 일이다.
차의 전래가 이미 선덕여왕 때에 있었으나 그의 유행은 이로부터 다시 180여 년이 지난 흥덕왕 때에 대렴(大廉)이 당나라에서 차 종자를 가져다가 왕명으로 지리산에 심은 이후이다. 삼국사기 본기 흥덕왕 3년 조항에 내용을 적어보려 한다.
고려 초기에는 차를 마시는 풍습이 꽤 성행하여 승려와 일반 백성이 한가지로 즐겼으니 적어도 상류사회에 많이 보급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던 것이 고려 수도가 한양으로 옮기자 불교의 배척을 따라 차를 마시는 풍습도 갑자기 쇠퇴하게 되었다. 이는 차를 마시는 것이 본래 선가(禪家)의 풍습으로 불교와 관계가 깊은 만큼 불교를 따라 쇠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한양 조에도 초기에는 오히려 고려 풍습이 얼마큼 남아있었으나 중엽 이후에 가서는 민속과 명물로 전하는 것 이외에 차란 것이 아주 그 자취 감추고 말았다. 어쩌다가 차가 학자의 박물고증의 자료로 문자 위에 보일뿐이었다.
신숙주가 세종 5년(1443)에 서상관(書狀官)으로 일본에 갔을 때, 그 풍속을 적은 일절에서 이렇게 적기를 일본인은 차 마심을 즐겨하여 길가에 찻집을 짓고 차 물건을 팔 때 지내가는 사람이 돈 1분(分)을 주고 차 1완(碗)을 마신다고 하였다.<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