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칠지도 명문
- 저자
- 박호균 지음
- 출판사
- 북랩
- 출판일
- 2016-06-23
- 등록일
- 2016-12-22
- 파일포맷
- PDF
- 파일크기
- 16MB
- 공급사
- 기타
- 지원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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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일본 역사학자의 거짓말을 밝힌 ‘칠지도 명문’
고대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끊임없이 주장하는 역사가들에게 반박할 수 없는 객관적인 논리로 한일관계의 진실을 밝힌다
유사 이래로 한국과 일본은 교류와 전쟁을 반복해 왔다. 그리고 고대 국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한국이 일본보다 우세한 지위에 있었음은 대륙에서 섬으로 이어지는 문명의 전달과정을 볼 때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일본은 이러한 사실을 줄곧 부정해 왔다.
이 책은 이런 일본의 역사 부정에 대해 움직일 수 없는 증거물을 통해 반박할 수 없는 한일관계의 진실을 흥미진진하게 밝히고 있다.
역사 연구의 바탕이 되는 문헌 자료가 없으면 ‘유물’로 추정하는 방법이 있다. 칠지도와 거기에 새겨진 글, 이른바 ‘칠지도 명문’은 당시의 유물이 원형 그대로 존재하고, 제작 시기와 이유, 제공자와 수령인이 명기된 신뢰도 100%의 역사 자료다.
저자는 이 움직일 수 없이 명백한 역사 자료에도 왜곡을 시도하려는 세력에 맞서, 객관적이고도 반박할 수 없는 논리로 고대 한일관계의 진실을 밝힌다.
삼국시대 당시의 국제 정세와 일본의 국내 사정, 그에 따른 백제와 왜의 관계를 칠지도 제작 당시와 전후의 시대 흐름을 꼼꼼하게 분석해, 칠지도가 백제에서 왜(일본)로 보낸 조공품이 아니라 하사품임을 밝힌다. 이로써 백제는 왜의 본국이고, 왜는 백제의 담로 지위였음을 증명하고 있다.
칠지도는 누가, 왜 만들었으며 그것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지 역사의 미스터리를 좇아 진실의 문을 여는 열쇠를 펼쳐 보자.
저자소개
1979년 출생. 대학원에서 한국 고대사를 전공했다. 원래는 역사학과 관련없는 분야에서 일을 하다 예전부터 관심있었던 한국사, 그중에서도 백제사에 대한 체계적인 공부가 하고 싶어서 하던 일을 정리하고 대학원에 들어가 전문적으로 공부했다. 이후, 그간의 공부와 연구 활동을 통해 쌓은 지식을 활용하여 칠지도 명문에 대한 참신한 해석과 함께, 여태껏 불완전하고 부족한 설명에 그쳤던 고대 한일 관계의 실체에 대하여 논리적이고도 꼼꼼한 설명을 담은 [칠지도 명문]을 썼다. 2016년 지금은 학교를 떠나 공직에 몸담으면서 백제와 고대 일본 관계사에 대한 보충적인 연구를 틈틈이 진행 중이며, 중국 사서에 나타나는 왜(倭)의 실체에 관한 새로운 연구도 계획하고 있다.
E-mail: asagyun09@daum.net
목차
들어가며
1. 칠지도 명문
칠지도 명문이 중요한 이유 15 ― 칠지도 명문의 내용 22 ― 명문의 구조 23 ― 제작 연도가 가장 중요하다 24 ― 408년설 32 ― \'병오정양\'은 길상구인가 35 ― 연호의 문제 39 ― \'태화\'는 백제의 연호인가0 ― 후왕(侯王)4 ― \'후왕\'은 의례적인 존칭 또는 길상구인가6 ― 백제의 후왕 제도9 ― 칠지도의 제작자 51 ― 칠지도의 제작과 전달 목적 52 ― 기생성음 54 ― 기생성음의 또 다른 해석 56 ― \'기(奇)\'는 누구인가 57 ― 그렇다면 구이신은 408년에 태어난 것일까 58 ― 구이신의 또 다른 이름 59 ― 백제왕세자의 탄생과 칠지도 62 ― \'성음\'과 동진하사설 64 ― \'성음\'의 의미 66 ― 위왜왕(爲倭王) 69 ― 왜왕을 위하여 만들었다? 71 ― 스다하치만 인물화상경 73 ― 전시후세 75 ― \'爲\'의 의미 77 ― 백제왕세자, 왜왕이 되다 80 ― 칠지도 명문의 해석 종합 82
2. 백제왕세자가 왜왕이 된 이유
백제가 왜에 진출한 이유 86 ― 백제 장수, 왜의 군사를 이끌다 89 ― 신공황후의 실체 92 ― 가야 7국과 침미다례 정벌 기사의 재해석 95 ― 그렇다면 누가 이 일을 주도했는가 96 ― 백제와 왜의 초기 관계 99 ― 고구려와의 전쟁 102 ― 백제의 위기 104 ―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왜군이 동원되었을까? 106 ― 왜군이 동원되지 못한 이유 110 ―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제는 왜의 지원이 필요했다 115 ― 백제는 근초고왕 이래 신라와의 관계 개선에 큰 정성을 들여왔다 117 ― 최후의 조력자 왜(倭) 121 ― 왜(倭)를 직접 관리하다 123 ― 왜에 담로를 설치하다 128 ― 프린스 오브 웨일스 134 ― 백제가 파견한 최초의 왜왕, 전지 136 ― 전지는 볼모였다? 142 ― 인질 파견의 문제점 148 ― 미사흔은 왜의 볼모가 맞는가? 150 ― 미사흔이 왜의 볼모였다는 또 다른 근거 156 ― 미사흔과 전지 159 ― 사건의 재구성 164 ― 김부식은 왜? 166 ― 두 명의 왜왕? 169 ― 전지 파견, 그 후 176 ― 왜군을 통해 고구려를 공격하다 177 ― 아신왕의 유산 181
3. 칠지도를 왜에 건네준 이유
전지왕의 고민 188 ― 칠지도의 탄생 189 ― 칠지도의 가치 191 ― 칠지도만으로 왜를 컨트롤 할 수 있었을까 192 ― 실질적 왜왕은 누구인가 193 ― 마나군과 사아군 202 ― 결론 206
맺음말 210
참고문헌 213